블로그2021-11-26T03:48:38+09:00

기독교 장례문화

임종을 지키자(4)

영안실(안치실)에 도착하면 장례지도사(천국환송 지도사)가 시신을 살펴본 후, 장례식장(환송식장)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고인을 덮는 이불을 깔고, 위생도구를 이용하여 코와 항문 등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불순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차단제와 냄새를 막기위한 방향제를 몸에 뿌려 냉장실에 안치한다. 그때 고인이 복수가 차지 않았을 적에는 위생제 사용이나 이불을 사용하는 것도 생략할 수 있으나 차가운 스텐레스 판 위에 그대로 시신을 안치하는 것은 도리도 아닐뿐더러 고인을 존경하는 뜻에서 이불을 사용한다. 이렇게 안치가 끝나면 명패에 고인(천국시민)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고인이 안치된 냉장고

집에서 심장마비나 취침중 사망, 자진 투신했을때

집에서 심장마비나 취침 중에 갑자기 사망하거나 어떤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자진 투신하여 사망하는 경우에는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는 당황하지 말고 먼저 관할 파출소나 경찰서 112에 신고하여 경찰관의 현장 검사를 받아야 된다. 경찰관의 현장 검사가 마치면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대형병원 영안실(장례식장)에 안치하고 경찰서에 찾아가서 처음 발견한 사람이나 상주, 또는 부모가 경찰에 진술하고 관할 경찰서 담당 검사의 지휘를 받아 '검사지휘서' 를 받아야 입관을 할 수 있다. 경찰이나 지휘 검사가 타살이나 범죄에 의한

임종을 지키자(2)

집이나 요양병원에서 노환이나 중병으로 임종을 맞이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양로원에서는 임종이 가까웠을 때 가족에게 알린다. 그때 가서 임종을 해도 되고 119구급차를 불러 요양병원이나 일반 대형병원 응급실로 옮겨 임종해도 된다. 그러나 요양원이나 가정에서 운명했을 때는 우선 마음에 두고 있는 병원 장례식장이나 일반 장례식장에 연락하여 운송 차량을 요청하여 병원 응급실로 운구하여 '시체 검안서' 를 발급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인이 생전에 병원에서의 '진찰기록' 이나 '진료 영수증' '처방전' 등을 준비하여 같이 가지고 가서 검안 의사에게 제출하여 '노환' 이나

복음양육서신

33-기도생활

<읽을성경>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멘)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자녀의 권리이자 특권이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 자녀에게는 기도할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살전5:17)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출33:11). 기도는 마치 백지수표와도 같습니다. 백지 수표를 받은 사람이 액수를 기록하고 싸인을 하면 효력이 생기듯이 기도하면 상상도 못한 엄청난 일이 생깁니다. 기도할때 믿음과 감사함으로 구하면 응답을 받게 됩니다(막11:24, 빌4:6,7). 하나님의

32-말씀양육

복음양육서신 NO.32 <읽을성경> 베드로전서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이후에는 말씀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갓난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어야 하듯이 영적으로 갓난 아이는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벧전2:2) 지금까지는 육신을 위해 밥을 먹었듯이 이제는 영혼을 위해서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령한 젖입니다. 베드로전서2:2절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1-증인

복음양육서신 NO.3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아멘)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은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체험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행22:15). 그러므로 증인은 말주변이나 능력, 환경, 상황, 조건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8절에는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의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구원받기전의 나는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창3:1~10, 엡2:1~3) 예수 그리스도를

파수꾼의 복음칼럼

천국입성, 천국환송을 위한 작별

인생은 '만남' 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출생'이 있으면 세상을 떠나는 별세(別世) 즉 사망이 있다. 시편 기자는 시편90:10~12절에서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씀한다. 이제는 우리 인간의 평균 연령이 늘어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100세가 되던 120 아니 150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 인생은 "시한부 인생" 이라는 사실이다(히9:27). 그리고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르기에 주어진 인생의 날 수를 셀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살

“예배본다” “제단 쌓는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우리 한국 교회가 예배 호칭에 대하여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은 "예배본다"라는 말과 예배 행위를 "제단 쌓는다" 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그 중에 "예배본다" 는 말은 한국교회 선교 초기부터 우리의 언어 습관 속에 정착된 말이다. 예컨대 술버릇을 "주벽"(酒癖)이라 하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을 "도벽"(盜壁)이라고 하며, 습관적으로 쓰는 말버릇을 "구습"(口習) 또는 "어벽"(語癖)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예배에 "본다"라는 말을 합성시켜 쓰게 된 것은 언어관습으로 일종의 어벽이 된 셈이다. 원래 "본다"(보다)라는 말은 시각으로 사물의 모양을 알거나,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상태

예배는 ‘드리는 것’ 인가, ‘하는 것’ 인가.

한국교회 대다수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예배호칭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통일된 호칭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예배드린다."  "예배 본다." "제단 쌓는다." "예배한다." 등의 호칭이 두루 쓰이고 있다. 그 중에는 "예배드린다"라는 호칭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호칭이 예배신학적으로 올바른 호칭일까?  계시(啓示)가 없는 이교(異敎)에서는 인간이 종교심성을 가지고 신(神)을 찾는다. 그 과정의 주도자는 당연히 인간이기에 신의 감응(感應)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드리고"  이 "드림" 의 치성(致誠)을 다한다. 이에 반하여 참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예배행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응답의 행위다.

풀어 쓴 복음편지

풀어쓴 복음편지(제4서신) – 왜 우리에게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풀어쓴 복음편지(제4서신) 왜 우리에게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예수만이 길이요, 예수만이 진리요, 예수만이 생명입니다(요14:6, 행4:12) 하나님 만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독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독선이 아니라 유일성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과 삶을 구별하지 못해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선(善)을 행하는 것이 모든 종교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공덕(功德)을 쌓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1. 복음과 종교 1)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고,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2) 종교는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고, 복음은 하나님이

풀어쓴 복음편지(제3서신)-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靈)이시므로 육(肉)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육신의 눈은 한계가 있어 큰 것은 보이지만 너무 작은 것은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은 보이지만 멀리 있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어떤 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며, 부소부지(無所不知)하시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손에 지어진 분이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여호와'이십니다. 인간은 육을 가졌기에 1) 육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2) 인간은영적존재이나 인간의 영은 육체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습니다. 3) 인간의

풀어쓴 복음편지(제2서신) –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인간이 불행한 것은 사단에게 속아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불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1) 영이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엡2:1) 2)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으나 타락한 이 후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 죽은 영이 되었습니다. 결과 사단의 영이 그 영을 주관하게 된 것입니다(고전2:12) 3) 지식, 지혜마저 어두워져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되었고(살후2:10,11) 4) 하나님의 말씀을

성서속의 식물

페니키아 향나무 (Phoenician juniper, coastal juniper)

페니키아 향나무(Phoenician juniper, juniperus phoenicea)는 해발이 낮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그리스향나무의 사촌이다. 지금은 시나이 북부와 요르단 남부의 산지 전체에 걸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자란다. 해퍼(Hepper)는 그것이 시나이와 아라비아의 더 높은 고지대 전체에서 자라는 것에 주목한다. 고대에 그것은 네게브 전체에 걸쳐 자랐을 것이다. 신명기 2:36절은 *아르논 와디의 끝에 자리한 아로엘로 불린 성읍을 언급하는데, 아로엘은 히브리어 '아르아르'('ar' ar) 와 동족어일 것이며 이 나무가 그 곳에서 자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르아르/아로에르' ('ar'/'aro'er)가 페니키아 향나무와 동일시되는 것은 여러 나라에 사는 아랍인들이

그리스향나무(Grecian juniper, 사비아향나무 [eastern savin]

사비아향나무로도 알려진, 키가 큰 상록수인 그리스 향나무(Grecian juniper, juniperus excelsa) 는 레바논 산지에서 레바논 개잎갈나무, 전나무류, 이태리편백나무(히브리어 단어 '브로쉬'[berosh] 는 아마도 이 세 종류의 나무를 모두 의미했을 것이다) 와 함께 자랐다. 에스겔27:5절에서 스닐 산과 함께 나오는 '브로쉬' (berosh) 의 군집은 '그리스 향나무' 일 것이라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다. 스닐산에는 그리스향나무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그 향나무류를 '브로쉬'(berosh) 의 동족어로 추측되는 브로타(brotha) 로 본다. 솔로몬 왕은 분명 그의 궁전과 여호와의 성전을

전나무류(fir, 잣나무)

솔로몬이 13년 동안에 걸쳐 지은 왕궁과 7년 6개월에 걸쳐 건축한 성전의 주 목재는 레바논에서 수입한 잣나무였다. 원어인 '브로쉬' (berosh)는 왕상5:8,10, 6:15,34, 9:11 왕하19:23, 대하2:8, 3:5  사60:13, 슥11:2절 등에 나타나는데, 이 잣나무로 번역된 '브로쉬' (berosh)는 그리스전나무 (cili-cianfir, abies cilicica)로 레바논개잎갈나무, 상록수인 이태리편백나무, 그리스향나무와 함께 레바논의 숲에서 많이 자란다. 히브리어 단어 '브로쉬' (berosh)는 아마도 전나무류, 이태리편백나무, 향나무류를 포함했을 것으로 본다.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로 '브로쉬' (berosh)를 사용한 것에 대한 에스겔 27:5절의 인용은 전나무류에 대해 잘 이야기해

성서속의 동물

정결한 동물

신명기 14:4~6절에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동물들의 목록이 나온다.  여기에는 세종류의 가축과 일곱 종류의 초식 동물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세 종류가 어떤 동물인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일곱 종류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각각에 해당하는 동물을 찾기 전에, 먼저 고고학적인 증거에 따라 어떤 동물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했는지를 추론하는 것이 필요 하다. 가젤(gazelle, 노루), 오릭스(oryx, 뿔이 긴 사슴), 아이벡스(ibex, 산 염소), 다마사슴(fallow deer)과 산에 사는 야생 양(羊)(mountain sheep, 산양)과 같은 동물들이 모두 이

야생동물, 또는 위험한 동물

성경에 야생동물(위험한 동물)과 관련된 원어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브헤마(behemah)- 신28:26(땅의 짐승들) 신32:24(들짐승) 삼상17:44(들짐승들) 렘7:33(땅의 짐승) 렘15:3(땅의 짐승) 렘16:4(땅의 짐승) 렘21:6(짐승) 렘34:20(땅의 짐승) 욜1:20(들짐승) 욜2:22(들짐승들) 미5:8(짐승들) *하야(chayah), 헤와 (cheywah)- 창37:20(악한 짐승) 창37:33(악한 짐승) 출23:11(들짐승) 출23:29(들짐승) 레17:13(짐승) 레26:6(사나운 짐승) 레26:22(들짐승) *쎄리온(the'rion)- 막1:13(들짐승), 행11:6 (들짐승), 행28:4,5(짐승) 위의 브헤마, 하야, 헤와, 쎄리온은 야생동물, 또는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들이다. 사자나 늑대 같은 동물뿐 아니라 뱀(snake)도 가리킬 수 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은 큰 악(惡)과 연관이 있다. 브헤마, 하야, 헤와가 야생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나르는 동물

*브헤마(behemah)-느2:12, 14 *브이르(be'ir)- 창45:17 *크테노스(kte'nos)-눅10:34,  행23:24, 고전15:39,  계18:13 이 범주에 속하는 동물에는 사람이 타거나 짐을 나르는 모든 동물들이 해당된다. 여기에는 나귀(donkey), 낙타(camel), 말(horse), 노새(mule) 와 소(oxen)가 포함된다. 누가복음10:34절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부상을 입은 유대인을 어떤 동물에 태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나를 수 있는 동물이었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많은 영어 역본들은 이 단어를 '짐승'(beast)이나 '승용마'(mount) 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타는 운송 수단이 나귀였음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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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파수꾼의 눈으로 본 ○○○의 삶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 그녀는 2019년 생리 불순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난소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여덟살이나 많은 48세(당시 실제나이 40세) 라는 진단을 받아, 얼마 남지 않은 '가임기' (可姙期) 때문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일본으로 건너가 난자를 채취 작년 11월 서양인의 정자 기증을 받아 시험관 수정을 거쳐 임신에 성공하여 비혼(非婚)출산, 아들을 얻게 되었다. 이런 과정 가운데는 그의 가족도 함께 협력하였는데, 그녀의 엄마는 일본에서 산부인과 상담을 미리 받아 두었고, 그녀의 오빠는 정자 기증 사이트까지 찾아주었다고 하며, 아버지도

‘축제’ 라는 말은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말인가.

대학가 행사문화에 즐겨 쓰이던 <축제> 라는 말이 어느때 부터인가 슬그머니 교회안으로 들어와 "성탄절 축제" "부활절 축제" "감사절 축제" "교회설립 기념축제" "말씀축제" "성령 축제" "새생명 축제" 등 모든 행사에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축제> 라는 말은 다음의 세가지 이유에서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을 시정(是正)해야 한다. 첫째, 이 <축제> 라는 말은 성경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으며 기독교 문화 언어가 아니라 이교(異敎)적이고, 차입(借入)된 미신적 민속 언어이므로 교회에서 사용 하기는 부적절한 언어이다. 둘째, 이 <축제> 라는 말의 조어(造語)된 과정이나 사용

애완동물. 반려동물은 과연 인간의 ‘가족’ 이 될 수 있는가.

"지난 4일 오후 전북 임실군 '오수펫추모공원' 검은색 정장차림의 직원들이 이날 오전 '노령' 으로 숨을 거둔 열아홉살 반려견 '축복이' 를 주인으로부터 건네 받았다. 반려동물 전문 장례지도사가 축복이를 소독하고 여러번 깨끗이 닦았다. 마지막 빗질도 곱게 했다. 이들은 삼베 수의로 갈아입은 축복이를 생화로 장식한 관(棺)에 눕혔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난 축복이와 16년을 함께 지냈다는 주인은 "천국으로 훨훨 날아가라" 며 눈물을 흘렸다." 이 기사는 지난 6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다. '오수펫추모공원' 은 국내 첫 반려동물 장묘시설로 지난 8월 초 문을

‘천국환송’ 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교회용어 바로쓰기] 의 저자 김석한 교수(전 천안 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 신학) 는 그의 저서 " '장례 예배' 를 '천국환송예배' 라는 말로 쓰는 것에 대한 제언(提言)" 에서 '천국환송예배' 라는 용어는 신앙인의 별세와 관련한 가장 현세적 문제를 지나치게 영성화한 초세 (超世)적인 미화법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죽음이라는 공리(公理)적 질서를 일단은 그대로 솔직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종교화하여 산자를 위무(慰撫 :위로 하여 어루만짐)하려거나 사후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시신(屍身) 처리의 단순한 개념으로 볼때 너무 비약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 있다"

하나님 자녀에게 명복(冥福)은 없다.

불신자들의 장례(葬禮) 인사말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것이 상례(喪禮)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천국 환송시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인사말은 적절한 것인가? 아시다시피 고인(故人)은 '죽은 사람' 이라는 뜻이고, 명복(冥福)은 '불교 용어로 사후의 세계로 일컫는 명부(冥府)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지 말고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죽은 사람의 사후(死後) 행복을 비는 불사(佛事)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씀하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잔다(요11:11, 행7:60)' 거나 '안식한다 (계14:13)' 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천국환송에 '고인' 이나 '명복' 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성도(聖徒)는

‘하나님의 부르심 소식 알림’ 에 소천(召天)은 과연 성경적 용어인가.

불신자들이 사용하는 '부고(訃告)' 라는 용어대신 우리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소천(召天)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부고'라는 의미가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 이라는 뜻이기에 성경적인 표현으로 대체(代替)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용어(바로쓰기) 사전' 에서는 소천(召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천(召天)은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선교 초창기에 한국 교회가 조성한 단어이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하늘을 부르다' 란 뜻이 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하늘로 부르다' 로 해석하여 '○○○를 하늘 로 부르다,'  곧 '○○○씨 가 하늘(하나님)의 부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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