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2021-11-26T03:48:38+09:00

기독교 장례문화

그리스도인의 천국환송 (장례)식을 일반 장례식장 에서 할 때

원래 혼례(婚禮)와 상례(喪禮)는 교회의 예식이었다. 초창기 한국 교회는 예배당에서 혼례와 상례를 모두 다 치렀다. 그러던 것이 우리 사회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면서 대부분 혼례는 예식장에서, 상례는 장례식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상업성을 띈 예식장과 장례식장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자 교인들은 주차장과 교통이 편리한 예식장과 장례식장으로 모여 들었다. 이 후로 혼례와 상례는 예식장과 결혼식장의 전유물(專有物)처럼 되어버렸다. 조건상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인의 천국환송(장례)식을 일반 장례식장에서 치러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의 경우 빈소를 이용하더라도 제단(祭檀) 을 꾸밀 필요는 없다. 기독교 관점으로

‘천국환송’ 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교회용어 바로쓰기] 의 저자 김석한 교수(전 천안 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 신학) 는 그의 저서 " '장례 예배' 를 '천국환송예배' 라는 말로 쓰는 것에 대한 제언(提言)" 에서 '천국환송예배' 라는 용어는 신앙인의 별세와 관련한 가장 현세적 문제를 지나치게 영성화한 초세 (超世)적인 미화법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죽음이라는 공리(公理)적 질서를 일단은 그대로 솔직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종교화하여 산자를 위무(慰撫 :위로 하여 어루만짐)하려거나 사후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시신(屍身) 처리의 단순한 개념으로 볼때 너무 비약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 있다"

하나님 자녀에게 명복(冥福)은 없다.

불신자들의 장례(葬禮) 인사말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것이 상례(喪禮)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천국 환송시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인사말은 적절한 것인가? 아시다시피 고인(故人)은 '죽은 사람' 이라는 뜻이고, 명복(冥福)은 '불교 용어로 사후의 세계로 일컫는 명부(冥府)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지 말고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죽은 사람의 사후(死後) 행복을 비는 불사(佛事)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씀하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잔다(요11:11, 행7:60)' 거나 '안식한다 (계14:13)' 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천국환송에 '고인' 이나 '명복' 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성도(聖徒)는

복음양육서신

39-승리의 확신

<읽을 성경>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당연, 필연, 절대적으로 승리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요1:14) 그리고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시고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롬5:8, 요19:30, 고전15:3,4) 부활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하나님 자녀의 마음 속에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요14:17, 엡3:17) 그러므로 *하나님 자녀는 아무 것도두려워

38-사죄의 확신

<읽을 성경> 요한일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에는 세가지 종류의 죄가 있습니다. 원죄, 자범죄, 조상의 죄입니다. 원죄는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죄로 유전되는 죄입니다(창3:1~6) 원죄가 유전 되는 것은 노예의 자녀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노예가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자범죄는 원죄의 결과로 온 허물의 죄이며, 조상의 죄는 우상숭배의 결과로 자손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죄입니다(엡2:1, 출20:4) 구원이란 이런 원죄, 자범죄, 조상의 죄와 과거, 현재, 미래의

37-기도응답의 확신

<읽을 성경> 마태복음 21:22 ''너희가 기도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기도응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므로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14:14, 요15:16, 요16:24) 둘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요15:7, 요일5:14) 셋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마21:22, 막11:24)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가지 방식대로 응답하십니다. 즉시 응답, 더 좋은 것으로 응답, 때로는 하나님이 무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응답도 응답입니다. 기도할때

파수꾼의 복음칼럼

공산주의판 성경이 나온다면?

중국 정부가 공산주의판 성경을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천헤드라인에 따르면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인 '순교자의 소리(VOM)' 는 "새롭게 번역된 성경에는 공산당을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VOM은 최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중국의 성경 개정판에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 가 추가되고, '공산주의 신념을 반영하지 않는' 구절들이 삭제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경에 유교와 불교를 포함한 다양한 원칙도 담길 것" 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변화의 한 예가 지난해 9월 출판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밝혀졌다. VOM은 "중국 공산당이 요한복음 8장의

이스라엘의 12지파

구약성경을 보면 야곱은 두 아내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첩 빌하와 실바를 통해 모두 12명의 아들을 얻는다. 그리고 이 12아들은 훗날 선민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12지파의 시조가 된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영적으로 신약시대의 12사도에게로 계승되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12기초석으로 연결된다(계21:14). 이런 측면에서 장차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하게 될 야곱의 12아들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펼쳐지는 일종의 못자리요, 섭리의 모처(母處)가 된다고 하겠다. 특별히, 야곱이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예언의 축복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향후 운명을 내다보게 한다(창49:1~27). 야곱의 12아들의 출생 순서는

은혜로 받은 구원

성경을 보면 죄에 대하여 어마무시한 형벌과 체형, 벌금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형벌의 목적은 범죄자에게 자성(自省)의 기회를 주고 회개시키려 하는데 있었고, 또 하나님의 성민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결을 유지하려는데 있었다. 또한, 형벌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형벌에는 투석형, 화형, 도살형, 효시형, 참형, 참극형, 십자가형 등이 있었는데 그중 투석형(投石刑)은 돌로 쳐 죽이는 것으로, 여호와를 저주하고 모독한자(레24:13~16.  22~23), 우상을 권하는 자(신13: 6~11), 몰렉에게 자식을 바친자(레20:2),

풀어 쓴 복음편지

풀어쓴 복음편지(제10서신)-기도하면 왜 질병이 떠나가는가?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기도하면 질병이 떠나갑니다. 그러나 질병의 아픔속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아픔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며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 질병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기회가 되며, 영적인 축복을 받을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질병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를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파 하셨고 사도와 초대교회 성도들도 치유와 복음전파를 병행했습니다 (마8:14~17, 행3:1~10) 1. 성경에는 많은 치유의 약속이 있습니다 1)"주께서 손을 대는 자는

풀어쓴 복음편지(제9서신)-왜, 기도는 영적인 과학인가.

기도는 영적인 과학입니다. 우리가 구(求)한 대로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기도를 하면 '이상한 응답' 이 옵니다. 불 건전한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기도하면 '신비주의적인 응답' 이 옵니다. 틀린 기도를 하면 '틀린 응답' 이 옵니다. 심지어  우상숭배하는 사람도 응답이 옵니다. 1.불신자들이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올까요? 1) 돼지나 소, 코끼리, 뱀(용) 같은 짐승에게 절하며 기도해도 응답이 오고, 이상하게 생긴 돌이나 고목나무에 절을 하고 공을 드리는데도 응답이 오며 부적, 그림, 사진 등을 놓고 기도하는 데도 응답이 오고 상자, 우상,

풀어쓴 복음편지(제8서신)-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힘이나 능력에 유혹받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종종 귀신의 능력이나 신비주의, 기복신앙 등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실제로 체험하게 됩니다. 1. 먼저 다음의 '영적인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창1:27) 2) 그런데 '사단에게 속아'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써 그 형상이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창3:1~10, 엡2:1,2, 요8:44) 3)

성서속의 식물

버즘나무류(plane, 신풍나무, 단풍나무)

히브리어로는 '아르몬' ('armon) 이며 창세기 30:37절과 에스겔 31:8절 두 곳에 이 단어가 나온다. 개역개정판 창세기 30:37 절에서는 신풍나무로 번역이 되었으며 에스겔 31:8절에서는 단풍나무로 번역되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창30:37) " ... 잣나무가 그 굵을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겔31:8) 외경인 집회서 24:14절에서는 히브리어가 플라타노스(platanos) 가 쓰인 것을 보면 우리가 아는 플라타너스나무 인 것으로 보인다. 식물학자 Zohary는 확신을 가지고 에스겔 31:8절의 '아르몬'('armon)을 버즘나무 (oriental

알레포소나무(Aleppo pine), 감람나무.들감람나무

히브리어는 에쯔쉐멘('ets shemen) 으로 왕상6:23, 31~33, 느8:15, 사41:19절에 나온다. 그 중 왕상6:23절을 보면, "내소(솔로몬성전)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규빗이라"(아멘) 예루살렘 소나무로도 알려져 있는 위엄있는 '알레포 소나무' 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토종 식물이다. 이스라엘에서 이 나무는 부드러운 토양과 백악질 토양에서 가장 잘 자라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지역에서 자라며, 이스라엘에는 흔하지 않았다. 오늘 현대에는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비축용으로 그 나무를 심는다. '알레포 소나무' 에 대한 현대 히브리어 단어는 이사야 44:14절에서 발견되는 '오렌'('oren) 이다. 일부

피네아소나무(stone pine, 디르사나무)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나무와상수리나무를 취하며.....(사44:14) 톰슨(1860년, Zohary 에 의해 인용) 에 따르면 피네아소나무(stone pine, pinus pinea) 는 피그놀리아(pignolia) 또는 피네아소나무(pinon pine)로도 알려져 있으며, 1800년대에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에 흔히 있었다. 에게 해 해안과 레바논에 피네아소나무 숲들이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갈멜산 산지와 갈릴리 지역의 해안평야에 피네아 소나무 숲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피네아 나무는 레바논에 많고, 그곳 사람들은 맛좋고 기름기가 많은 씨를 얻으려고 그 나무를 심었다. Zohary 는 이사야 44:14절의 히브리어 단어 '티르자'

성서속의 동물

사슴(deer)

일찍이 가나안에는 세가지 과(科) 의 사슴이 있었다. '다마사슴'(fallow deer, Dama damd) '붉은 사슴' (red deer, Cervus elaphus) '노루'(roe deer, Capreolus capreolus) 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붉은 사슴은 출애굽 시대 이전에 사라졌고, 노루는 깊은 계곡의 우거진숲에서만 서식했으므로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마사슴이 가장 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다마사슴은 야생에서도 돌아다녔고, 솔로몬 왕 시대에는 사슴 공원에서도 사육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히브리어 '아얄'('ayal) 은 사슴, 특히 수사슴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이름이다 (신12:15, 23 14:5 15:22) '아야라'('ayalah)와 '아옐레트'('ayeleth) 는

낙타.단봉낙타(單峯駱駝: Camel, dromedary)

낙타. 단봉낙타는 히브리어로 '베케르'(beker), '비크라' (bikrah) : 사60:6, 렘2:23 '가말'(gamal) : 창12:16, 24장(18회), 30:43, 31:17, 34(총54회) '키르카라'(kirkarah) : 사 66:20 '카멜로스'(kame'los) : 마 3:4, 19:24, 23:24, 막1:6, 10:25, 눅10:25 등으로 쓰여졌다. 다만 창세기12:16절의 히브리어 '가말'(gamal)이 낙타를 언급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은 있다. 성서시대에는 두가지 유형의 낙타가 알려져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은 이 지역에서 자생한 '아라비아 단봉낙타' 이다. 등에 혹이 두개가 있는 '쌍봉낙타' 도 알려져 있었고 귀하게 여겨졌지만, 이 낙타는 중앙아시아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낙타는

부발하테비스트(bubal hartebeest[roe deer] 노루)

히브리어는 야흐무르(yachmur) 이며 성경에는 신명기14:5절과 왕상4:23절  두곳에 나온다.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신14:5)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왕상4:23) 대부분의 영어 역본들은 히브리어 '야흐무르'(yachmur) 를 '노루'(roe deer) 의 남성형인 '수노루'(roebuck) 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성경 동물 학자의 다수는 이 번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노루가 성서 시대에 흔한 동물이었지만 1년 중 일부는 홀로 그리고 일부는 한 쌍으로 지낼뿐, 떼를 지어 살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노루가 아주 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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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예식인가, 결혼 예식인가.

'혼인 예식' 이 맞을까, '결혼예식' 이 맞을까 아니면 둘 다 혼용해도 무방한 것일까? 지금 교회 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인' 과 '결혼' 이란 말은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혼인(婚姻)' 은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곧 남녀가 부부가 되는 일" 을 말하고, '결혼(結婚)' 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로서,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는 것" 으로 혼인의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혼인' 은 '결혼'의 과정적 표현이고, '결혼' 은 '혼인'

성경적, 복음적, 언약적 웰다잉 미리보기

인생의 3대 중대사는 출생, 결혼, 죽음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게 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반드시 죽음의 시간표가 다가오는 것이다. 히브리서 9: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라고 선언한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 결국 우리 인간은 "시한부인생" 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간표는 오직 하나님 만이 가지고 계신다.  출생과 결혼은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지만, 죽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날 찾아 온다. 그래서 준비해야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살면서

천국입성, 천국환송을 위한 작별

인생은 '만남' 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출생'이 있으면 세상을 떠나는 별세(別世) 즉 사망이 있다. 시편 기자는 시편90:10~12절에서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씀한다. 이제는 우리 인간의 평균 연령이 늘어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100세가 되던 120 아니 150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 인생은 "시한부 인생" 이라는 사실이다(히9:27). 그리고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르기에 주어진 인생의 날 수를 셀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살

“예배본다” “제단 쌓는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우리 한국 교회가 예배 호칭에 대하여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은 "예배본다"라는 말과 예배 행위를 "제단 쌓는다" 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그 중에 "예배본다" 는 말은 한국교회 선교 초기부터 우리의 언어 습관 속에 정착된 말이다. 예컨대 술버릇을 "주벽"(酒癖)이라 하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을 "도벽"(盜壁)이라고 하며, 습관적으로 쓰는 말버릇을 "구습"(口習) 또는 "어벽"(語癖)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예배에 "본다"라는 말을 합성시켜 쓰게 된 것은 언어관습으로 일종의 어벽이 된 셈이다. 원래 "본다"(보다)라는 말은 시각으로 사물의 모양을 알거나,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상태

예배는 ‘드리는 것’ 인가, ‘하는 것’ 인가.

한국교회 대다수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예배호칭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통일된 호칭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예배드린다."  "예배 본다." "제단 쌓는다." "예배한다." 등의 호칭이 두루 쓰이고 있다. 그 중에는 "예배드린다"라는 호칭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호칭이 예배신학적으로 올바른 호칭일까?  계시(啓示)가 없는 이교(異敎)에서는 인간이 종교심성을 가지고 신(神)을 찾는다. 그 과정의 주도자는 당연히 인간이기에 신의 감응(感應)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드리고"  이 "드림" 의 치성(致誠)을 다한다. 이에 반하여 참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예배행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응답의 행위다.

성경에 사용된 숫자의 상징적 의미

성경속에는 많은 숫자가 등장한다. 1, 2, 3, 4, 5, 6, 7, 8, 10 ... 이런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단순한 수치일까, 아니면 숫자속에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히브리인들은 십진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십진법이란 0, 1, 2, ... 9의 10개의 숫자를 한 묶음으로 하여 한 자리 올려가는 방법이요, 1, 10, 100, 1000, ... 과 같이 10배마다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는 '기수법' 이다. 히브리인들은 바벨론 포로이전까지 수를 표현하기 위해 완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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