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사람, 더 부정한 어른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율법학자인 서기관들과 경건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자를 끌고와서 그들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시험한다.
“선생이여,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선생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묻는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다. 그때 그들이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님은 일어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를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나이많은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꽁무니를 빼고 모두 사라진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일까?  모든 사람은 죄인 (롬3:23)이고, 부정하다는 것이다(사64:6)

‘나이 많은 어른으로 시작하여~’  이 말은 나이 많은 어른일수록 더 부정하고 죄가 많다는 말이 아닐까?  달리 생각하면 어른이 젊은이 보다 자신의 부정함과 죄를 먼저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3년 전부터 앞으로 걸어갈 30년의 ‘이면계약’을 하나님과 맺고 촌음(寸陰)을 아껴 내 인생의 작품을 쓰고 있다. 그 중에는 일주일에 세번의 글을 쓰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글중 하나가 ‘파수꾼의 칼럼’ 이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소통 하고 있는 단톡방에 내가 쓴 칼럼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평소에 나는 그분이 나보다 어른인데도 매일 칼럼을 써서 올리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칼럼을 발견한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  내가 쓴 글과 글자하나 다른 것이 없는데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쓴 칼럼처럼 턱하니 내 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다싶어 문자를 보내 원저자(原著者)의 이름을 밝혀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핑계와 변명, 합리화와 회유(懷柔) 등 이었다. 끝내 사실을 인정하거나 사과의 말은 없었다. 두리뭉실,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그런일이 있은 후 나는 그분에 대한 모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 분의 가치는 물론이고, 그 분의 글과 삶 전체가 부정하게 느껴졌다. 물론 지나친 확대 해석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어른일수록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은 무엇인가?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일까?  어른은 어른 다워야 한다. 만약 자칭 어른이라면 언제부터 어른인가? 만약 자칭 노인이라면 언제부터 노인인가?

요즘 2030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꼰대’ 라는 단어다. 꼰대는 뭔가?  국어사전에는 “은어로, ‘늙은이’ 를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요즈음에는 이 단어가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소위 “나때는~” 이라는 단어를 쓰면 꼰대라고 한다.

“나때는 말야!”

하면서 하는 말이 꼰대의 말이고 꼰대짓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 이지만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꼰대짓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도 모든 사람은 창3장 (나중심), 창6장(물질중심), 창11장(성공중심)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른들이 ‘어르신’ 이라거나 ‘노인’ 이라고 하면 내가 왜, ‘어르신’ 이냐, 내가 왜, ‘노인’ 이냐며 화를 낸다. 그러면서도 어른 대접은 받으려고 한다. 전도자라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복음이 복음되게 해야 한다. 복음(경건)을 결코 이익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된다(딤전6:5)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달하는 일꾼이요, 심부름꾼이다.

전도자는 상식이상의 수준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상식이하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도자는 위, 아래, 옆, 높이, 깊이, 넓이, 과거, 현재, 미래를 항상 살펴야 된다. 우리의 잘못된 각인으로 복음이 방해받게 해서는 안된다.

즉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분쟁, 악독, 비방, 이기주의 등 복음아닌 다른 것으로 각인된 각인을 복음으로 치유해야 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내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갱신하고 치유해야 된다.

2021. 05. 31(월) 아침

접경지역으로 남토북수 (南土北水)의 쌀맛 좋은 연천 전곡에서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