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양(止揚)할 장례문화, 지향(志向)할 장례문화

장례는 조선시대 성종(9대왕) 때가 되어서야 평민과 천민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양반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그러다 조선 말엽에 가서야 상인과 평민이 장례를 치르는데 3일장, 5일장을 택했다. 그러나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에서 자본이 부족한 평민은 3일장 치르는 것도 벅차 빚을 내서 치르는 경우도 있었고,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는 평생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 동리에는 동네 사람이 상가(喪家)에서 밥과 술을 마시고 한쪽 방에서는 투전판이 벌어졌으며 상주와 유족은 장례가 끝날 때까지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哭)을 해야 했고, 조문객이 올때마다 서로 엎드려 맞절을 했다.

부의(賻儀)는 닭, 계란, 쌀, 보리 등의 현물로 했으며, 개화기가 되어가면서 조의금이 생겨 서로 품앗이를 했다. 장례는 보통 집에서 치렀으며 6.25전만 해도 조문할때 조의금은 거의 없었고, 도회지나 일부 상위층에서 조의금을 내는 정도였다.

그 후 국민의 생활이 점차 나아지면서 40, 50년 전 부터 조의금이 생활화되기 시작했으며 조화(弔花)가 상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다 조화도 이제는 점차 늘어나 상가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크고 작은 장례식장이 생겨나면서 조화는 사회의 계급, 부, 권력 등의 상징이 되었고, 사회의 문제가 되어 한 상가에 조화를 5개로 제한한 법이 생기기도 했다. 이로인해 화훼업자의 항의와 끈질긴 저항으로 정부는 자율적으로 맡기게 되었는데, 이제는 악덕업자의 농간으로 화환이 재탕, 삼탕하면서 되돌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또한 조의금은 거래의 온상이 되고, 분에 넘치는 조의금을 하여 청탁을 하기도 하여 인사 치례로 하던 조의금이 상호 거래처럼 되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장례지침서, 신성호)

여기까지는 지양할 장례문화, 세상풍조요 세상문화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깊이 고민하면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기독교 장례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오늘 기독교 선교 140년이 가깝도록 이렇다할 기독교 장례문화가 없다. 그저 예배만하고 기도만 하면 기독교 장례인가?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복음가진 기독교인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혹자는 범 교단적으로 합의된 기독교 장례문화를 제시하라고 한다. 그러나 범 교단적으로 합의된 기독교 장례가 그리쉽게 나오겠는가.

좀 부족할찌라도 연구하면서 만들어가야 어느날 합의된 기독교 장례 모범이 나오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우선, 우리의 장례문화의 문제점을 짚어 보면서 지향할 장례를 생각해 보자. 우리 전통적 유교 문화는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혼상제를 중시한 나머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형식을 중시했다.

‘부의’ 의 경우 옛날에 닭, 계란, 쌀, 보리 등의 현물로 했던 풍습은 어렵던 시절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이런 풍습은 미풍양속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물로 ‘부의’ 하던 것이 부의금으로 바뀌면서 청탁으로까지 번진 것은 권력에 아부하는 기회주의자들의 행실이었을 것이다. 이 부의금을 긍정적이며 복음적으로 받아들여 어려움을 당한 가정을 돕고 전도, 선교차원으로 승화시키면 어떨까?

그 부의금(신의금)으로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고 비용을 절약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천국시민’ 이름으로 237선교센터, RUTC, RTS 등에 선교 헌금이나, 장학헌금으로 드리면 좋을 것이다.

조화는 사회의 계급, 부, 권력 등의 상징이 아니더라도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허세요, 엄청난 낭비이므로 우리 기독교인 가정의 ‘천국 환송’ 에는 당연히 사라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복음가진 기독교인들은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우상문화요 허례허식인 장례문화는 과감하게 청산하고,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장례문화를 선도(善導)해야 한다. 평생 언약의 여정을 걸어가며 남긴 작품이나 복음 사역 등을 기념하고, 추억 하는 장례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2021. 04. 23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