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어버이의길, 후회없는 자녀의 길 (삼하13장~삼하19장)

어느날 압살롬의 누이 동생 다말은, 이복 오빠인 암논이 연모(戀慕)하여 궤계(詭計)를 써서 그를 강간한다. 이로인해 앙심을 품은 압살롬이 2년 후 양털을 깎을 때 잔치를 베풀어 왕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암논이 취할 때를 기다렸다가 그를 살해한다.

이 일이 다윗왕에게 알려지자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달매에게로 망명을 간다. 망명생활 3년이 지나도록 왕이 압살롬을 찾지 않자 다윗의 충신 요압 (나중에 다윗이 학깃을 통해 낳은 아들, 아도니야가 모반 (謀反)할때 요압도 함께 참여한다)이, 다윗 왕에게 충언을 하여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도 압살롬이 용서가 되지 않아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를 사가(私家)로 돌려보낸다. 압살롬은 예루살렘 사가에서 2년이나 지냈지만 왕은 그를 한번도 부르지 않는다. 결국 압살롬은 요압 장군에게 중재를 요청해 왕을 대면하게 되고,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한다.

압살롬은 지난 날이 상처가 되어서인지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그로부터 4년 후 비밀리에 군대를 모집하여 부왕에게 반역을 도모한다. 그 반역의 무리 중에는 다윗의 모사 (謨士) ‘아히도벨’ 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황의 위중함을 깨달은 다윗 왕은 왕궁을 지킬 후궁 10명만 남겨 놓은 채 모든 가족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즉시 도망을 한다. 그때 다윗은 “아히도벨” 의 모략이 어리석게 해달라” 고 절박한 기도를 한다.

다윗의 기도 응답으로, 다윗의 신실한 친구인 ‘후새’ 가 압살롬에게 위장 귀순하여 압살롬에게 거짓으로 모략을 조언한다. 다행스럽게 압살롬의 모략을 압살롬이 받아들여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전열(戰列)을 정비한 왕은 압살롬과의 전면전을 계획하고 군대를 3대로 편성하여 요압, 아비새, 잇도를 지휘관으로 하여 출전
하게 한다.

이 전쟁에서 결국 압살롬은 전사하게 되고, 다윗이 승전하게 된다. 이 승전보를 대제사장인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 가 전하고, 또 한 사람인 구스 사람이 압살롬이 전사했음을 알린다.

이때 다윗왕은 가슴을 찢는 슬픔에,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슬피울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이고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통곡한다. 이로인해 그 날의 승전은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자, 충신 요압이 “우리는 오늘 왕과 왕의 자녀들과 왕비와 후궁들의 생명을 구했거늘 왕은 오히려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하고 다윗 왕에게 항의한다.

이에 다윗왕은 마음을 추스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세상에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자식 앞세우는 일” 이라는 옛 말이 있다. 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는 말도 있다. 다윗의 애통함 속에는 아비로서 죽은 아들에 대한 비탄과 함께 이전에 자신이 행했던 범죄가 가져온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아픔이 어우려져 있었을 것이다. 이미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과 암논을 잃은 상황인데다 압살롬까지 잃었으니 그 슬픔과 애통함은 극대화 되었을 것이다. 거기다 그것이 자신의 죄값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최 전선에 보내 살인했을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를 통해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신다(삼하12:10) 다윗은 한 때의 탐욕으로 한 가정을 파괴시키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행한 악행이었지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마6:4) 의 심판은 다윗에게는 뼈져린 아픔이 되었다.

여기서 잠시 그의 악행과는 별개로 부모된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모든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녀는 부모의 분신(分身)아닌가? 그런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전사를 했으니 다윗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것도 이미 두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마저 자신의 죄값이라고 깨달았을때는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압살롬이 그 부왕의 가슴 저미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부모는 언제나 자식앞에 서는 죄인의 심정이다. 늘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에게 늘 불만이다. 그러기에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어느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후회가 막급하다. 시간 지날수록 후회가 된다. 내가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구나! 생전에 좀 더 잘할껄, 좀 더 효도할껄…!

이런 갭(gap)를 없앨 수는 없는 걸까. 아니 줄일 수는 없는 걸까? 후회없는 어버이의 길, 후회없는 자녀의 길 말이다. 아마도 그 방법은 부모님 살아 생전에 서로간에
마음을 주고 받는 소통에 있지 아니할까? 자녀는 부모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잘 모른다. 그러니 서로 하느라 하지만 항상 삐걱거린다.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며, 때로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필요하고 포럼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가정의 날’ 로 정해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아니면 우리 가정만이 통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교우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다. 상호간 복음으로 원니스(Oneness)되어
후회없는 언약의 여정을 살자!  그리하여 이 세상 떠나는 날은 후회도, 미련도 없는 아름다운 이별이 되도록 말이다.

2021. 04. 19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