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인간의 완장욕구

사람은 명예를 추구한다. 명예는 자랑스런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명예심은 ‘완장욕구’ 가 된다. 국어사전에서 명예는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 라 정의 한다.

완장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 이다. 이 완장은 팔에 두르는 순간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된다. 거기서 나오는 것은 온갖 갑질이고
성질이다.

완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일 ‘나치 친위대’ 다. 그들은 팔에 완장을 두르고 온갖 만행과 학살을 저지른다. 유대인과 폴란드 유격대원, 구 소련의 전쟁포로 강제 수용소였던 슈토트호프 수용소에서는 약 6만 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은 어떠했는가. 또 일제 시대의 헌병과 6.25때 죽창부대 완장은 어떠했는가?

윤흥길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 은 어느날 저수지 낚시터 관리인으로 취업한다. 그는 감시원 완장 을 차고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그는 밤에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과 그 아들을 두들겨 팬다.

그리고 낚시하러 온 도시의 남녀에게 기합을 주며 거들먹거린다. 면 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때도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한다. 급기야는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금지하다 결국 감시인 자리에서 쫒겨난다.

이후에도 그는 ‘완장의 환상’에 사로잡혀 가뭄 해소용으로 물을 빼려는 수리조합직원과 마찰하고 경찰과도 부딪친다. 세상에 이런 ‘완장형 인간’ 이 어디 임종술
뿐이랴!  손남주 시인은 그의 시(詩) 《완장》을 통해 비루하기 짝이없는 인간 심성을 드러낸다.

“나도 ‘완장’ 이었다. 밥 때문에, 목숨 때문에 완장이 됐다. 주인은 높은 곳에 있어 잘 몰랐지만 그의 충직한 하수인이 된 순진한 완장이었다. 완장은, 권력이었고, 아부였고, 횡포였고, 비굴이었고, 분노였다. 하찮은 헝겊과 비닐 조각이 팔뚝을 끼면 어떻게 그 엄청난 변신을 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구태여 따지러들지 않았다.”(중략)

조선시대 3대악녀로 장녹수, 정난정, 장옥정이 꼽힌다. 그중 장녹수는 연산군의 후궁으로 기생 출신이다. 정난정은 서녀 (庶女)로 태어난 기생 출신으로 명종의 외삼촌이자 재상인 윤원형의 둘째부인이다.

장옥정은 어린 나이에 아비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 궁녀가 되어 희빈의 자리에 오른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완장은 차지않았지만 마음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무서운 완장을 차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어려움과 신분의 한계로 인해 인정받지 못한 상처다.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니 상처가 그들의 발목을 잡아
완장욕구에 사로잡혀 악명을 떨친다.

최근엔 시내에서 팔뚝에 완장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마, 완장욕구를 채워 주려는 상술이 낳은 거리의 풍경일 것이다. 이런 완장 욕구가 단지 정치나 세상 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까? 교회는 어떠한가. ‘섬김의
도’ 를 추구해야 될 교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과 완장이 존재한다. 각종 모임 에서는 자리싸움이 일어나고 완장을 두고 서로 다툰다. 국어 사전에도 없고 어법
에도 맞지 않는 ‘증경’ 이라 는 직함아닌 직함이 생겨났다. 증경회장, 증경노회장, 증경총회장 등이다.

오늘 웃지 못할 풍경은 장례식장도 예외가 아니다. 상주들은 왼쪽 팔뚝에 완장을 찬다. 그것도 한술 더 떠 완장에 줄을 넣어 계급을 정한다. 넉 줄 완장은 맏 상주다.
석 줄 완장은 나머지 아들들이고, 두 줄 완장은 사위다. 그리고 한 줄 완장은 손자 형제들이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수단이었다는 완장이 아직도 보란듯이 버젓이 존재한다.

누가 이런 훈령(訓令)을 내렸을까?  평생 완장 이라고는 학창시절 ‘주번’ 완장이나 행사시 ‘안내’ 완장 말고는 차보지 못한 속물 들의 한풀이인가?
지나친 완장에 대한 욕심은 죄를 낳게 되고, 그 죄는 사망을 낳게 된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말씀한다. 실제로 ‘장녹수’ 는 반정 군사들에게 붙잡혀 군기사 (軍器寺)앞에서 참형을 당했고, ‘정난정’ 은 황해도 강음으로 유배되어 결국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으며 ‘장옥정’ 은 사약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지나친 완장욕구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은 것이다.

이런 완장욕구는 인간의 오욕(五慾)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의 완장욕구는 끝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허위의식’ (虛僞意識)을 버려야 한다.
또 장례가 장례다우려면 이런 허위의식을 다 버리고 다가온 죽음앞에 진실해야 된다. 그래야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우리의 허위의식과 허세를 가슴을 치면서 울며 폐기처분할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울음으로 태어나는 새생명처럼 울음의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된다.

2021. 04. 05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 목사

※주(註)
*오욕(五慾):사람이 갖는다섯가지 욕심, 즉 식욕, 색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완장욕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