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드리는 것’ 인가, ‘하는 것’ 인가.
한국교회 대다수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예배호칭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통일된 호칭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예배드린다.” “예배 본다.” “제단 쌓는다.” “예배한다.” 등의 호칭이 두루 쓰이고 있다.
그 중에는 “예배드린다”라는 호칭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호칭이 예배신학적으로 올바른 호칭일까? 계시(啓示)가 없는 이교(異敎)에서는 인간이 종교심성을 가지고 신(神)을 찾는다. 그 과정의 주도자는 당연히 인간이기에 신의 감응(感應)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드리고” 이 “드림” 의 치성(致誠)을 다한다. 이에 반하여 참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예배행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응답의 행위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드린다” 는 말은 예배원리에 합치되지 않는다.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적인 희생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다” 라는 행위가 요구되었다. 분명히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제사의식에서
짐승이 희생제물로 드려졌다. 이것은 구약적 예배의 주된 요소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고”(히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2)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10:18) 고 하셨다. 따라서 히브리서10:18절 이후에는 예배를 위해 “드리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완성되었고, 다시는 피흘림이나 희생이 전혀 요구되지 않으므로 “드린다” 라는 말은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요구되었던 말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드리다” 는 개념은 이교(유,불,선,무교)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특히 샤머니즘의 수복(壽福)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즉 “드림” 으로 받을 수 있다는 원시 종교의 기복사상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신약 히브리서9장과 10장에 “드리다” 라는 것은 구약의 표현을 그리스도의 중보성에서 사상적 인용이며, 그것은 희생적 헌신의 의미로 보아야 하기에 “드린다” 라는 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예배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는 “드리고”, “받는” 의미는 전혀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자녀가 만남과 교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예배”
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마치 이교에서 “불공을 드리고” “공양을 바치고” “치성(致誠)을 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혹여, 예배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대한 공경의 표현으로 “드린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윤리적인 종교관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행위로써,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과 감사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하다” 라는 말 외에는 성경적으로 그 어떤 호칭도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예배하다” 의 성경적 근거는 “주님의 말씀” (요4:20~24)과 “구약의 호칭”(요4:20, 12:20)과 “주님 당시의 호칭” (요4:24, 시8:27) “사도들의 호칭”(행24:11) “예배는 하나님께만 하는 것”(마4:10, 시73:25)이라는 등의 기록을 포함하여 예배라는 단어가 55회나 기록되어 있으나 예배는 전부 “한다” 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서방의 전 문서 에도 예배는 “한다” 로 기록하고 있으며, 공포된 신경과 신조 중 “한다” 라는 말 외의 표현을 한 일이 없다. 이렇게 예배에 관련된 수식어는 모두 예배는 “한다” 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므로 예배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 교제, 체험, 찬양, 송축, 영광, 헌신, 경배 등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하나님을 향한 신앙 행위이며,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에 대한 영성적 작용이므로 예배는 ‘드리는 것’ 이 아니라, 예배는 ‘하는 것’ 이다.
2021. 12. 24(금) 아침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목사
※참고도서 – [교회용어 바로쓰기] 김석한저, 대서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