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복음적, 언약적 웰다잉 미리보기

인생의 3대 중대사는 출생, 결혼, 죽음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게 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반드시 죽음의 시간표가 다가오는 것이다. 히브리서 9: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라고 선언한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

결국 우리 인간은 “시한부인생” 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간표는 오직 하나님 만이 가지고 계신다.  출생과 결혼은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지만, 죽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날 찾아 온다.

그래서 준비해야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고 부도덕한 이미지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야 할 대상이다.

웰다잉은 죽음과 관련해 평소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 올지라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하루 하루의 시간이 소중함을 알고 촌음을 아껴 삶을 가치있게 살게 된다.

결국 웰빙(well-being)의 삶을 산 사람이 웰다잉 (well-dying)할 수 있다. 웰다잉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웰다잉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죽음 준비교육”이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벌써 죽음 교육을 공론화하고, 학교에서 죽음 준비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공립 초.중.고교는 죽음에 관한 책이나 시, 음악 등을 공부하고, 장례식장과 공원묘지를 방문한 후 토론하는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독일에서는 죽음에 관한 다양한 교과서가 출간되어 있고, 대만에서는 ‘죽음학’이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죽음 준비 교육의 불모지가 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웰다잉을 위해 죽음 준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가 받아야 할 교육이라고 지적한다. 아름답게 삶을 마감하지 못한다면 웰빙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웰빙의 마침표는 웰다잉인 것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는 살면서 묵은 감정과 갈등을 모두 풀고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화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는 자녀와 가족, 친척, 친지 등을 초청하여 감정과
갈등을 풀고 화해의 시간을 갖으면서 그동안 인생길에 동행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이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자신도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이나 지인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천국환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웰다잉을 위해선 사전에 장수사진(영정사진)을 촬영해 두고, 유언장 작성, 유품정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천국 환송 사전 의향서 등을 작성해 두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으로서는 죽음준비가 되고, 자녀와 가족들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닥칠 그 날의 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 50장에 요셉이 110세에 임종을 맞이하여 그 형제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그 때에 자신의 유골을 메고 가라고 부탁하면서 언약적인 유언을 남긴다. 역대상 23장에는 다윗이 성전에서 봉사하게 될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직무를 구체적으로 맡겨줌으로써 참된 성전운동 할 것을 부탁하며 언약적인 유언을 남긴다.

전도자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사를 하며, 디모데후서에서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과 자신에게 훈련받은 대로 제자 사역할 것을 권면하고, 천국 배경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부탁하는 말을 남긴다.

바울과 같은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후대에게 길이길이 남길 작품을 쓰며,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나침반이 되고, 등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오늘도 성경을 필사하고, 성경적이며, 복음적이고, 언약적인 기독교 장례문화 확립을 위해 글을 쓰며 [상수리나무 선교회] 홈페이지에 자료를 남기고 있다.

2022.  01. 10(월) 아침

福音의 파수꾼
임정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