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죽음 이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라틴어 격언에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억하라” 고 했다.

죽음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노화, 질병, 사고, 범죄, 형벌 등…..
어떤 이유로 죽든지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시한부 인생이요, 유한한 존재이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창세기 2:7절에 보면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체로 만드셨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일하라고 말씀하시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9: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씀했고 로마서5:12절에는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 말씀한다.

이런 영향으로 중세시대나 청교도들은 죽음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말신앙으로 순교자적 삶을 살았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중세교회나 청교도들처럼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활의 소망’ 으로 바라보았다.

대 예배학자인 ‘제임스화이트’ 는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그리스도인은 승리자로 간주하고 장례식 절차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개선장군과 같은 승전적 성격을
가져서 찬양과 할렐루야로 소리쳤다” 고 말했다.

이런 초대교회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 받아야 할 신앙의 유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유교적 정신, 유산으로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이며 터부시 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교는 죽음을 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요 삶의 과정이요, 연속이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 장사(葬事)가 있어야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이 있었겠는가? ‘죽음은 천국으로 나아가는 관문(關門)이요, 천국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해 이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도 터부시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사한다면 축복해주고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20세기 영성가 ‘헨리 나우엔’ 은 ”죽음은 본향으로 가는 날(Home Coming Day) 이기에 가장 큰 선물” 이라는 장례식 문구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헨리 나우엔은 죽음을 본향으로 가는 날로 Home Coming Day 로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터무니 없는 것으로 ‘거부’하고 ‘터부시’ 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바로 이해하여 죽음은 끝이 아니요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부하며 터부시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 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고 했다.

죽음은 홀로 가는 길이기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혼자가는 여행길이 힘들기 때문이다. 누가복음12:13~21절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 는 ‘이생’이 끝인줄 알고 곳간에 곡식을 잔뜩 쌓아놓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 라고 말씀하시며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불러가면 네 곳간의 곡식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웰다잉(Well-Dying)을 위해 웰빙(Well-being)의 삶을 살아야 한다.  ‘웰빙’ 이 없이는 ‘웰다잉’ 도 없다.

앞으로 걸어갈 30년을 위해 오늘도 나는 1일 3작하며 30년 후 웰다잉을준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