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장례문화
유럽에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핀란드,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많은 국가들이 있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국가로 프랑스의 장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맨 먼저 문을 연 공설묘지는 파리에 있는 ‘페르라세즈’ 묘지로 1800년 부터 파리시민의 유택지(유적지)로 애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벌써 220년 전 부터다.
나무가 우거진 야산에 영국식 정원개념을 살려 조성한 이 묘지는 세계 최고의 근대식 묘지로 파리시민이 가장 많이 묻힌 프랑스의 대표적 집단 묘지다. 총 10만 여개의 분양묘소에 50여 만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 묘지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묘지다.
공원식 묘지로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에게 항상 무료로 개방돼 햇볕이 좋은 날이면 묘지 곳곳에 심어진 수목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등 산책나온 주민들의 공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묘지는 5년, 10년, 30년, 50년, 100년 시한부로 이용되어 끊임없이 재 사용 되고 있다. 묘지는 대부분 가족묘 형태로 합장되며 1기당 분묘 면적도 반평 이하로 넓지 않다. 임대 기간이 끝나면 뼈만 남은 시신을 꺼내 40~50Cm의 네모난 상자에 넣어 공동 유골장에 안치시킨다. 그리고 시신이 매장됐던 그 땅은 2년의 정비 기간을 거친 뒤 다시 재 분양한다.
임대기간이 만료되었을 때는 10년 단위로 매장 기간을 연장하여 임대료를 지불한다. 그러나 연장 기간은 30년이 대부분이고 길어야 50년이다. 유족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무덤을 관리할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한 세대 또는 두 세대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신은 매장 후 최대 3~5년이면 모두 탈골되어 결국 뼈만 남는다. 이와같이 프랑스에서는 시한부 묘지제도의 합리적인 운영과 공원화 시설로 죽은 자의 공간이 산자가 함께 공유하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묘지에는 개성있는 갖가지 조형물을 설치하여 마치 조각 공원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만약 묘지 사용기간이 끝났는데도 유족들이 찾아 가지 않는 유골 즉 무연고 무덤은 3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화장해서 공동 유골장에 안치한다.
프랑스에서 묘지는 주로 주택가 내에 위치한다. 사자(死者)의 죽음의 공간은 산자와 동떨어진게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묘지는 더 이상의 혐오시설이 아닌 하나의 복지시설이자 편의시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묘지는 철저하게 산자를 위한 공간이면서도 가족의 뿌리요, 사회의 얼굴이요, 국가의 위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사후에는 가족의 영원한 원동력이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장례 문화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우리 한국에서는 사후(死後) 묘지의 면적이 생전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측면이 다분히있었다. 예컨대, 왕릉이나 옛날 사대부들의 묘지는 확연히 달랐다. 가깝게는 국립묘지 현충원 운영부터가 다르다. 살아서는 신분상 지위고하가 있을 수 있으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고 평등한 것이다. 굳이 국토도 좁은 나라에서 죽어서까지 허세를 부리며 넓은 땅을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땅에 묻힐때는 단 한평이면 족하다. 넓은 땅을 차지하여 부와 권력의 위세를 떨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워졌다. 그런데 왜 부모에게는 효도할 것을 강조하면서 막상 부모가 돌아가시면 주택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산에다 장례를 치르는 것일까? 삶과 죽음은 별개라는 사상때문일까?
그러나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택과는 동떨어진 깊은 산속이 아닌 산자들의 생활권에 속하는 가까운 곳에 정원형태나 공원형태의 장묘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부모는 자녀들의 뿌리가 아닌가? 사람은 때가 되면 누구나 다 죽는다. 묘지가 더 이상 혐오시설이 되면 안된다.
그리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묘지로 뒤덮여도 안된다. 이런 의식의 전환이 우리 기독교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